시키는 대로만 살았더니 죽을 것만 같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나아지지 않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문득 고귀한 내 존재가 한낱 부품 같다는 생각 이 드는 날이 있다. 어느 날 아침은 출근하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그대로 퇴근하고 싶어진다. 분명 성과를 낸 것 같은데 보상은커녕 작은 칭찬조차 못 들은 날이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렇게 일하고 있나 싶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 많은 직장인이 번아웃을 느끼는 것 같 다. 아, 정정한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자주’다. 포털 사이트에 ‘직장인 번아웃’을 검색하면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90%까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는 기사를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이 못된 감염병은 안 그래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번아웃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빨라도 수십 년은 더 걸릴 거라 예상한 비대면 사회가 거짓말처럼 현실에 도래했고, 사람들은 ‘회 사’라는 공간을 떠나 일하기 시작했다. 환경 변화에 맞춘 세계적 인 실험이었다. 재택근무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직장인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겼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메신저, 급하게 잡히는 비대면 회의의 증가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와중에 트렌드는 여전 히 쫓아가기도 버겁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변화한다. 마이크로소 프트가 자사의 협업 솔루션 ‘팀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1년 2월 원격회의 시간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5배나 늘었다고 한 다. 많은 이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는 조금 더 유연한 근 무환경을 찾기 위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변화는 더 이상 ‘소용돌이’가 아니다. 이제는 ‘폭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떻게 하면 꺾이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그리 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고,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맞다. 이건 현생을 살아가는 내 이야기이자 고민이다.
(운명적일지 모르겠지만) 변화의 폭풍 속에서 이 사람이 떠오른 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대탐험가 콜럼버스 의 발견은 인류가 세상을 인식하는 지평을 넓혔다. 비록 죽을 때 까지 자신의 발견이 ‘인도’인 줄 알았다는 건 함정이지만, 인류가 탐색할 무대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직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오늘 날, 새로운 콜럼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탐험선 을 띄우고, 닻을 올리고 돛을 펼치며 각자의 여정을 떠난다. 기성 사회의 성공 공식보다 내게 맞는 성장법을 찾는 시간이 필요해졌 다. 굳이 ‘필요해졌다’라고 표현한 건 일각의 주장이나 의지가 아 니라 그런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출판번역가의 꿈을 가지고 퇴사한 서메리 작가는 그가 꿈꾸던 출판번역가이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유튜버로 살아가고 있다. 그간 쌓은 전문성과 시행착오를 토대로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물 론 시작과 과정은 쉽지 않았다. 틱톡커로 손꼽히는 ‘듀자매’의 허영주는 정해진 시스템에 따 르면서 생활해온 아이돌 출신이다. 걸그룹 데뷔 후 삶은 그의 기 대와 달랐다. 화려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2014년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던 그는 자신에게 맞는 시스템을 찾아내 600만 명이 팔로우하는 크리에이터로 성장했다, 나 역시 작은 배를 띄운 탐험가다. 사회생활 10년 차, 그리고 착 실하게 딴짓한 지 16년 차. 일터에서는 기자와 PD로 살고, 회사 밖에서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강연을 한다. 세 권의 청소년 도 서를 출간했고, 사진전을 열었다. 어떤 사진들은 서울 어딘가에서 판매 중이다. 내가 쓴 글이 수십만 밀레니얼 독자들의 공감을 끌 어내기도 했다. 새해를 맞아 얼굴도 본 적 없는 인스타그램 친구 들과 독서루틴 모임을 시작했고, 낯선 이들과 기꺼이 연결되는 시 간을 즐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저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일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일까. 이 세상에서 ‘나다움’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것 은. 모두가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지금, 내가 말하려는 나다움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왜 일하고 있고, 왜 일을 잘하 고 싶을까. 주어진 근무 시간만 잘 지키고 월급만 밀리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우리는 왜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나다운 일을 꿈꾸는 걸까.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그곳이 회사든 아니든, 내가 발을 딛고 선 무대라면 말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작은 칭찬에 행복했던 기 억, 연인을 위해 기획한 이벤트가 대성공해 행복했던 기억처럼 ‘인정’은 본능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삶을 바라며, 남에게도 인정 받기를 원한다. 회사는 공과가 명확한 무대다. 좋은 성과를 보상 받을 수 있지만 작은 실책에도 비난받기 쉽다. 과거 직장인은 회 사에서 인정받으면 그만이었다. 회사 명함에 찍힌 이름과 직책만 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었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터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우리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더이상 회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의 일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불행한 이유 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들로 내 시간을 채워서일지 모른 다. 수면 시간을 빼면 24시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하 는 시간’을 나에 맞게 디자인할 수 있다면 성공도 성장도, 나아가 행복까지도 내 가치에 맞게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인정 에 목마른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자기계발의 범위가 넓어졌다. 모든 경험이 나를 개발하는 소재 가 된다. 경험은 시간을 초월해 다른 경험과 연결된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딴짓’이라 표현했다. 딴짓, 다른 말로 ‘사이드 프로젝트’ 는 더 이상 회사 몰래 하는 활동이 아니다. 딴짓은 본업에 영감을 주기도 할뿐더러, 회사 안팎에서 나다운 성장을 가능케 한다. 변 화의 시대에 ‘딴짓’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성장을 가져다주는 확 실한 길일지 모른다.
여기서 오해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흔히 말하는 ‘부캐’나 ‘사이 드 프로젝트’는 외향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일까?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못해요’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단호히 ‘아니다’라 고 답하고 싶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외향 적일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트리플 A형이자 I로 시 작하는 MBTI를 가진 나도 부캐가 4가지나 된다. ‘내향적 관종’ 이자 ‘선택적 인싸’들에게도 행복하게 활동하는 방식은 존재하는 법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나의 탐험은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다행인 점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 기회가 기회를 낳는 선순환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 회사뿐 아니라 작가로서 사진가 로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도 조금씩 이지만 만나곤 한다. 아직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 속에서 헤매기만 하던 때보다 나의 다양한 면을 건드려보고 색칠해가는 지금이 행복하다.
책의 부제를 ‘욕심은 많지만 용기는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성 장법’이라고 지었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날 떠오른 문구다. 당장 내 것을 하고 싶어도, 모두가 퇴사를 외치는 세상에서는 나 의 것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조차 녹록지 않다. ‘내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탓이며, 우리가 자라온 환 경이 개성이나 차별점보다는 여전히 ‘정답’을 찾으라 말하기 때문 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질풍노도의 중2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는 고3 시절보다 더 흔들리고 방황한다. 이 책은 나처럼 용기 가 아직 욕심을 따르지 못한 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자, 딴짓을 저질러보자는 제안이다.
바라건대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서로 연대할 수 있기를. 변화 속에서 흔들리고 꺾일 때 서로가 서로의 완충지가 되어 나만의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