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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인 프롤로그 : 왜 실리콘밸리의 코치는 정글로 갔을까?

이야기는 14년 전, 내 나이 스물네 살부터 시작한다.

나는 아이비리그를 우등으로 졸업한 뉴욕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애널리스트였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미국에 연이 있던것도 아니었기에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듯 안간힘을 쓰며 가까스로 성취한 목표였다.

 

그런데 목표를 성취하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그다음 목표가 보였다. 비디오게임 같았다. 밤새 레벨 업을 했는데 새로운 레벨이 바로 시작되었다. 다음 레벨을 부수면 여유가 생길 거라 믿었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환상의 오아시스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내 주변에는 스프린트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남들은 내가 성공가도를 달린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돌아갈 집은 없었다. 더 성공하고 더 돈을 많이 벌고 더 아름다워지면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꿈의 도시라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 스타트업에 조인했다. 뭔가 멋진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은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남들 다 잘하는 연애가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 나의 가장 큰 팬이던 엄마가 돌아가셨다. 명상의 ‘명’도 모르던 나였지만, 이거라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다.

행복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더이상 불행하기 싫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살고 싶었다. 유명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석했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마음을 다스리고 꿈을 이루게 해준다는 책들을 읽었다.

“자신을 믿으세요.”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인 것처럼 사세요.”
“마음의 관찰자가 되세요.”
“자유롭고 싶다면 의심을 지우세요.”
“당신은 이미 완벽합니다.”

 

나를 어루만지는 메시지가 꾸준히 주입되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말들이 빛 좋은 개살구 같다고 느꼈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에서 실행이 안 됐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나를 믿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게 되는 사람들은 나보다 용기 있거나, 더 운이 좋거나, 돈벌이 걱정을 덜해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닥쳤다. 콘크리트 감옥 같은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재택근무를 했다. 삶의 낙이라곤 외로워서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 룰루와 산책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이 났다. 공기가 너무 나빠져 유일한 낙이었던 산책마저 못하게 되자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코로나가 무서웠지만 깨끗한 공기를 찾아 뉴욕으로 도망쳤다. 2020년 9월의 일이다.

 

그렇게 방문한 뉴욕은 내가 살았던 예전의 뉴욕이 아니었다. 코로나에 점령당한 뉴욕은 어떤 계획도 무용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불확실함을 없애기 위해 항상 계획을 세워 내 뜻대로 컨트롤하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라 믿던 나였는데, 매 순간 일어나는 돌발 상황을 포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찾은 이스라엘 레스토랑에서 유대인의 새해맞이 축하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생애 최고의 저녁을 보냈다. 꼼꼼히 계획해 참가했던 그 어떤 화려한 이벤트에서도 느끼지 못한 기쁨을 만끽했다. 확실성, 계획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내 눈앞에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공기를 찾아 용기 내 시작한 여행은 나를 찾는 여정의 첫걸음이 되었다. 그 여행은 나를 멕시코와 파나마의 정글로 인도했다. 편리함과 생산성을 신봉하고 벌레를 끔찍이 싫어하는 도시인인 나로서는 한 번도 갈 생각을 못했던 곳들이다. 언어 배우는 것에 젬병이라 스페인어를 못해 말도 안 통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깊은 자연으로 초대하는 내 인생의 부름에 용기를 내 응답했다. 그리고 정글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변화시키는 누에고치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자 빛 좋은 개살구 같다고 여긴 바로 그 메시지들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에 마법같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믿기 시작했고,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졌다. 경직된 마음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타인의 기준에서 나를 내려놓게 되었다. 물론 30년 넘게 살아온 성공지향적 삶의 방식을 하나씩 내려놓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펼쳐진 드라마 같은 일들을 겪기 시작하니 삶의 신비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삶의 신비에 뛰어들수록 조금씩 더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글에서 보낸 8개월의 누에고치 시간은 내가 나의 허물을 벗고 탈바꿈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해주었다. 스타트업들과 일하는 뱅커였던 내가 리더십 코치가 되어 나의 코칭 전문 회사를 설립하고, 미국에서 최고라 손꼽히는 개인 계발 프로그램 중 하나인 호프먼 프로세스의 선생님이 되고, 책을 쓰는 작가가 된 것이다!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일을 하되, 내 일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더 중요한 변화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외로움을 많이 타던 내가, 내 안의 기쁨을 발견하고 평안함을 느끼는 일상을 즐기게 된 것이다. 삶의 신성함, 웅장함, 완벽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경험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원하는 것은 이미 지금 모두 가지고 있는 풍요함을 깨닫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에 순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의 나는 조금 더 자유롭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과 씨앗인데, 요즘 파인애플이 핫하다고 파인애플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파인애플에 좋다는 관엽식물용 토양에 나를 심어 키웠다. 고온 다습한 환경이 좋다고 온실에서 키웠다. 정성을 들인 끝에 새싹이 텄다. 하지만 파인애플은 열리지 않았다.

 

오늘의 나는 사과 씨앗에 맞게 애지중지 길러준다. 이 씨앗의 가능성을 최대한 키워준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가장 새콤달콤한 사과가 열린다. 이처럼 내가 잘 사는 방법은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나는 두려움과 부정적 마인드의 한계를 넘어 내게 맞는 길을 걷는다. 이것이 곧 자유다.

 

그 자유 안에서 명상을 하던 어느 날, 내가 변화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남들과 공유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온 나는 한국어가 서툴다. 한글로 글다운 글을 써본 게 20년도 전의 일이다. 이런 나이기에 한국어로 책을 쓰는 작가가 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it found me’, 즉 삶이 나를 이 길로 초대했다. 이 길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나의 ‘퍼스널 레전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가장 먼저 나의 고향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응답했다, 아임 인(I’m in). 그래, 할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뭐가 특별하다고 글을 쓸까, 너무 사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런 글솜씨로 괜히 한국어 책을 쓴다고 한 게 아닐까 후회될 때도 있었다. 괜히 나를 믿어준 출판사를 더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온 메시지를 떠올렸다. 책을 쓰라는 메시지는 우주가 나를 통해 무언가 창조해 들려주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나는 우주의 메신저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걱정과 에고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성을 다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에너지와 사랑으로 마치 나의 사과나무를 키우듯이, 최선을 다해 글을 썼다. 나머지는 우주에 맡기기로 했다. 될 일이라면 될 것이라 마음속 깊이 믿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스스로를 이상형으로 여기거나 어떤 큰일을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경험과 배움을 통해 의심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어서다. 나는 세상을 바꾸거나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삶을 진솔하게 공유한다. 엄밀히 말하면 내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을 통해 배운 레슨을 공유하고 싶다. 이런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 이 책의 제목이다. “아임 인(I’m in) : 삶이 초대할 때는 응답하라.”

 

엄마의 몸 속에서 생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삶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삶은 이미, 바로 지금, 우리를 통해 흐르고 있다. 삶의 흐름은 깊은 강과 같다. 타고난 흐름이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무한히 지혜롭다. 그 지혜 안에는 우리가 사과 씨앗인지, 파인애플 씨앗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이미 있다. 우리의 과제는 그 지혜를 정중히 듣는 일이다. 마라톤이나 스프린트가 아니라 멈춰 서는 것이다. 삶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제 삶의 초대에 ‘아임 인’이라고 응답해 정글로 간 실리콘밸리 코치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2021년 11월
멕시코 정글에서
임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