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승희 님은 기록을 ‘왜’ 하나요?
A. 첫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상사가 왜 회의시간에 기록을 하지 않느냐고 한 것이 계기라면 계기일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제 기록의 시작은 ‘고민’ 때문이었어요. 이 책도 처음에는 마케팅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되었는데, 차츰 세상에 제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우리는 누구나 매일 다른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가잖아요. 그 와중에 지나간 이야기는 잊히고요. 망각을 보완할 수 있는 건 기록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 기록하면서 기록이 ‘나’라는 사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됐어요. 주말 아침, 이동할 때, 아침에 눈 떴을 때 틈틈이 기록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저를 알아갑니다.
Q. 승희 님이 생각하는 기록의 범위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일까요?
A. 흔히 ‘기록’이라 하면 짧은 글이나 일지, 회의록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요. 굳이 글이라는 형식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자신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겠죠.
저는 하루 동안 겪은 느낌, 일에 대한 고민, 사람들과 나눈 대화, 유튜브나 책, 넷플릭스에서 기억에 남은 구절들을 모두 기록에 포함시켜요. 친구들과 재미로 찍은 영상이나 인스타 라이브, 제가 만든 독립출판물도 당연히 기록이 될 수 있고요.
Q. 기록하면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특정 순간을 꼽기는 어렵고요, 습관적으로 아카이빙을 하다 보니 제 콘텐츠가 많아졌어요. 덕분에 마케팅할 꺼리, 즉 아이디어나 기획을 제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기록의 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요리를 예로 들면 아주 유명한 셰프가 아닌 다음에야 요리 방법은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재료 싸움이죠.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유리한 건 당연하고요. 어떤 재료를 조합해야 색다른 맛이 나는지 아니까요. 콘텐츠도 마찬가지인 거죠. 제가 해온 기록이 마케터 이승희의 역량에 도움이 될 때 보람을 느끼고, 마케터로서 힘을 얻습니다.
Q. 무척 활발하게 기록하는데, 기록이라는 행위가 피곤하게 느껴진 적은 없나요?
A. 저도 사람인데 기록이 피곤할 때도 있죠. 그런데 하다 보니 어느새 ‘기록형 인간’이 되어 있더라고요. 기록을 토대로 사고하게 된 것도 기록형 인간이 되는 데 한몫한 것 같아요. 직업상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녀야 하고 차별화된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생각이 안 나서 고민스러운 것보다 훨씬 낫거든요. 제 기록물을 토대로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 수월해졌어요. 앞에서 기록의 보람을 물어보셨는데, 어찌 보면 기록형 인간이 된 것 자체가 보람 있는 일이에요.
Q. 오랫동안 해온 기록으로 책을 내는 거잖아요. 앞으로 기록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A. 우선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과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기록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찾아 더 재미있는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기록의 쓸모’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효용성이나 효과보다는 ‘기록’이라는 결과물 자체가 기록의 가장 큰 쓸모 아닐까 싶습니다. 남들에게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면 가장 보람 있는 기록의 쓸모일 테고요. 기록하는 시간은 자신을 객관화해주고 전보다 더 성실하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무엇보다, 기록을 남기는 삶은 생각하는 삶이 됩니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기록을 통해 내 경험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쓸모도 찾을 수 있을 거고요. 모든 기록에 나름의 쓸모가 있듯 우리에게도 각자의 쓸모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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